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 (오슨 웰스) 리뷰 - 우리 모두 악에서 자유롭다 할 수 있는가
'상하이에서 온 여인'은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인물들의 욕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각 인물들이 서로 다른 동기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인물들의 관점에 따라 사건의 해석이 달라진다. 이 영화를 캐릭터 중심 구조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이다. 영화는 마이클의 독백과 주변인들이 개입하여 부연설명하는 다소 낯선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모든 설명이 마이클의 시각에서 전달되기에 엘사와 그로스비의 음모가 드러나는 시점마다 관객들은 놀랄 수밖에 없다.
사건의 전말을 아는 영화 관람객은 엘사와 그리스비를 가장 나쁜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악인이다. 엘사는 베니스터를 죽여 그의 돈을 챙기고 공모자 그리스비까지 죽여 보험료까지 손에 쥐려한다. 하지만 악한 본성과 달리 타인에게는 늙은 남편 시중을 드는 가엾은 여인으로 인식된다. 실제로는 악의 중심에 있으나 겉보기에는 그 누구보다 악과 거리과 멀다. 그리스비는 베니스터의 파트너로 항상 옆에 붙어 있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그에게 화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베니스터에게 갖는 열등감, 질투로 그를 죽이고 돈까지 챙기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베니스터 또한 거대한 부를 바탕으로 안하무인 식으로 사람을 대우한다. 형사 브룸을 고용하여 엘사의 불륜을 약점으로 잡으려는 치졸한 모습까지 보인다. 후반부에는 마이클의 변호사로 나서지만 다리에 장애가 있는 자신과 달리 건장한 마이클을 향한 질투심으로 유죄판결을 앞둔 마이클을 약올리기까지 한다. 모두가 각자의 악한 본성을 감추며 속고 속이는 게임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인물들처럼 악은 자기자신을 위장해 항상 우리 곁을 맴돈다. 보다 상세히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갖고 있는 악을 자기연민, 책임회피, 피해의식으로 치장해 내면 깊숙히 품고 있다. 영화 마지막의 거울 장면은 거듭된 왜곡 속에 감춰진 악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겹겹이 쌓여 있어 현상이 희미해진 악은 선한 것처럼 보이나 그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감춰지면 그 깊이만큼 피해는 커지고, 자신과 상대의 악에 모두가 파멸에 이른다.
표면적으로 마이클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다. 엘사와 그리스비의 음모를 모르는 배심원들에게 마이클은 악 그 자체이다. 영화 속 제 3자의 입장에서 범죄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마이클은 유부녀 엘사와의 사랑에 눈이 멀어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엘사를 감시하는 브룸을 죽여 바람을 피었다는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한 후 위자료를 챙긴 엘사와 만난다. 브룸에 대한 살인 자백서는 없다는 점, 그리스비를 바다에 유기했다는 자백내용과 달리 시내에서 그리스비가 발견된 점 등 의심할 만한 요소는 많다. 하지만 재판장에서 이 같은 요소들은 관심 밖이다. 변호사가 스스로 질의응답을 하는 상황, 폭소로 가득찬 재판장, 껌을 의자에 붙이는 방청객까지 살인사건의 무게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연출된다.
실제 사건에서 마이클은 죄를 모두 뒤집어쓴 피해자이다. 아니, 정말 피해자인가? 그는 엘사와의 도주비를 마련하고자 살인을 위장해 사라지려는 그리스비와 계약을 체결한다. 사적욕망을 위해 스스로 덫에 걸려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은 없지만 그의 선택이 없었다면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실제로 죽이는 게 아니니 괜찮다는 변명은 욕망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기위안일 뿐이다. 마이클이 언급한 상어는 엘사, 베네스터, 그리스비를 의미한다. 하지만 싸움에 시동을 건 첫 피냄새의 주인공은 마이클 그 자신이다. 살인사건을 한낱 가십거리로 생각하는 배심원들의 태도와 그들의 무지는 어떠한가. 이들은 죄가 없다 할 수 있을까? 두 명의 인물이 살해 당했고, 이제 누군가의 운명이 자신들의 손에 달린 상황에서 이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긴 했으나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은 배심원들의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건에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도 결국 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상하이에서 온 여인'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그대들은 과연 선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떳떳하다고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