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그릇을 줄이자.
우리 모두가 행복을 원한다. 다만 각자가 갖는 행복의 그릇은 그 크기가 모두 다르다. 그릇이 가득 채워질수록 행복해지고 욕구가 충족되는 기분에 안정감까지 든다. 문제는 지금부터 발생한다. 우리가 가진 행복의 그릇은 도자기가 아니라 고무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득 채울수록 풍선처럼 늘어나서 다시 꽉 채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행복이 필요하다. 더 이상 이전의 자극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가 없다.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자. 아침의 햇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 따뜻한 우유, 눈부신 경관, 잔잔한 선율로부터 벅찬 감정을 선물받았다. 일찍 일어나야 하고 먼저 약속을 잡고 열심히 걸어다녀야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 끝에 찾아오는 아주 소소한 행복에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자극들이 널리고 널렸다. 맛있는 음식들, 단순한 예능영상들, 게임 등등.. 음식 중독과 핸드폰 중독이 현 우리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크기의 행복 그릇을 갖고 있다. 그 크기가 클수록 더 강하고 더 많은 양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행복이 중독이 되고 행복에 무뎌져서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하는 바람은 정말 행복을 원하는 자가 해야 하는 소원일까? 행복해진 순간 내 욕망이 무한히 커져서 소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지 못할까봐 무서워진다. 아니, 벌써 우리들의 행복 그릇은 늘어날 대로 늘어난 것일지 모른다. 진정 행복하고 싶다면, 그니까 지속적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틈틈이 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 그릇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소소한 자극으로부터 웃기 위해, 욕망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행복 그릇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처음에는 그릇을 가득 채우지 않기에 하루하루가 심심할 것이다.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아 몰라'하는 심정으로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마다 주먹을 꼭 쥐고 오늘 하룻동안 받은 자극들을 생각해보자.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 아침의 갈증을 해소한 물, 추운 날씨에 목에 두른 머플러의 촉감과 같이 아주 세세한 것으로부터 난 행복했다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최면을 걸어보자. 그리고 하늘에 간절히 빌자. 다만 '행복하게 해주세요' 대신 '제발 지금 참고 있는 욕구의 크기만큼 제 행복 그릇의 크기를 줄여주세요'하고 말이다. 그 그릇의 크기가 작아지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와 그대들이 정말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물론 그릇을 채웠던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