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득 영화

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리뷰 - 꿈과 기억을 통한 시간의 중첩

by 문득이의 바람 2022. 11. 9.

평소 꿈과 기억이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이반의 어린 시절' (My name is Ivan)을 몰입감 있게 볼 수 있었다. 꿈에서 발현되는 현상들 혹은 데자뷰는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다. 또한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추억하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이 무의식을 통해 다시 현실로 소환되는 것이다. 무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특정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만들어 흐르는 시간 속 나를 형성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과거가 현실로 들어오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순간 시간은 더이상 선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선으로 된 시간이 꼬여 중첩되기도 하고 역행하기도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어린 소년 이반의 의식은 소련의 정찰병으로 활동하는 현재에 있지만 무의식은 가족들이 나치에 의해 죽은 과거에 머문다. 무의식은 끊임없이 이반이 나치에 갖는 증오를 불태우고 각성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중첩하며 시간의 물리적 속성을 극복하고 있다.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시간을 조각한다'라고 말했듯, 그는 꿈과 환상 그리고 기억을 통해 시간을 선형 구조에서 탈피시킨다.

영화에서 이반의 기억으로부터 형성된 꿈과 현실은 물을 매개로 연결된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 속 양동이의 물과 우물에는 엄마를 향한 그의 사랑이 담겨 있다. 비 오는 날 사과가 가득 든 트럭 위에서 여동생과 재밌게 노는 시간은 이반의 추억이자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다. 하지만 엄마가 죽으며 양동이의 물은 쏟아지고,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물처럼 이반은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물리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단지 꿈과 무의식을 통해 과거와 접할 뿐이다. 한편 나치군 정찰을 끝내고 군대로 복귀할 때 건너는 강, 쫄딱 젖은 몸, 다시 적진에 들어갈 때 탔던 강 위의 보트는 이반이 실제로 돌아가야 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같은 물일지라도 시간의 흐름 속 그 의미가 희망에서 절망으로 변화한 것이다.

시간을 분절된 것으로 인식하면 모든 행위는 완료의 형태가 된다. 시간표를 짤 때 시작 전의 행동을 이미 수행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반을 보면 그가 연속된 시간 속에서 형성되어 가는 중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지나간 시간을 계속 접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라는 단어는 필요 없어지며 그 경계는 불분명해진다. '이반의 어린 시절'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감독이 시간의 비분절성을 롱테이크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이반이 콜린, 갈트세프와 보트를 타고 적진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이 극화되어 영화를 보는 관객임을 잊고 마치 그 현장에 같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속 흐르는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일치함에 따라 다른 공간에 있어도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능동적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이반의 얼굴을 정면으로 클로즈업하는 기법도 선보인다. 인물의 표정과 눈이 부각되기에 이전에 봤던 스탠리 쿠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 '풀 메탈 재킷'이 떠올랐다. 로렌스의 확대된 얼굴은 숨겼던 악을 들켰지만 '들켰네, 근데 어쩔 거야'하고 뻔뻔하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클로즈업으로 인간의 악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전쟁의 참상을 다룬 것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확대된 이반의 얼굴에서 나치를 향한 복수심과 동시에 어린 나이에 느낀 두려움과 외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같은 클로즈업일지라도 인간 본연의 약한 모습까지 보여주며 전쟁의 비참항을 다룬것이 영화 '이반의 어린시절'이 갖는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