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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영화

영화 '슬리퍼' (우디 앨런) 리뷰 - 문화적 차이가 웃음코드에 미치는 영향

by 문득이의 바람 2022. 11. 22.

'미드나잇 인 파리'로도 유명한 영화 감독 우디 앨런은 입양딸과의 결혼이나 성추행 파문으로도 사생활 논란에 휩싸인 전적이 있다.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살짝 꺼려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 우디 앨런의 작품이 그리 찬사를 받는지 궁금했다. 비교적 최근작을 보기보다는 그의 영화세계가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고 변화했는지 알고 싶어 여러 옛날 영화 중 하나를 보기로 했다. 무엇을 볼지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각본상을 받았다는 '애니 홀'을 선택했다. 우디 앨런이 곳곳에 넣었을 웃음코드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 자막을 따로 다운받아 영어자막과 함께 봤다. 초반부터 수많은 독백과 대화가 오고가는 도중 앨비가 하는 대머리와 백발의 농담에 나오는 사회주의의 언급, 유태인으로서 갖는 과한 피해의식, 맥루한의 등장까지는 어찌저찌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앨비가 극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대학에서는 논문을 쓴다고 하는 여성에게 좌파 유대인 같다고 할 때 시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냉전 시기 중심에 있던 미국에서의 사회주의 인식, 극우민족주의 나치즘과 유대인 사이의 껄끄러운 역사와 유대인의 이민 등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은 있다 할지라도 개그코드로 이용될 때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영화의 코미디 요소로 북한의 독재, 일제시기 친일파, 좌파, 불교와 기독교를 이용한다. 또한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잘 알기에 상황의 맥락과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하지만 우디 앨런이 사용하는 코믹 소재로의 유대인은 서양권에서 어떤 의미인지 깊게 와닿지 않아 '애니 홀'의 진면목을 발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다 비교적 더 전에 만들어진 '슬리퍼'를선택했다.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변장과 몸개그는 단순하지만 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감독한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외적 요소를 통한 코미디가 특징이었다. 코를 갖고 복제수술을 하는 척 할 때 보여준 과장된 행위들과 로봇인 척 하는 마일스는 국적을 불문하고 개인적 취향만 맞는다면 성공적인 코미디 요소로 작동할 것이다.

나는 로맨스, 코미디, 액션, 휴먼, 공포 등등 다양한 영화장르 중에서도 코미디와 휴먼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이 깊었던 해외영화로는 언터쳐블 1%의 우정을, 한국 영화로는 완득이를 뽑을 수 있다. 로맨스에 있어서도 진지한 관계를 다루는 정통 로맨스보다 코미디와 결합한 로맨스를 좋아한다. 그만큼 웃음은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코미디는 그 어떤 장르보다 문화적 특징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한국의 코미디는 현대판의 경우 공조, 그것만이 내 세상, 극한직업, 수상한 그녀가 한국인으로서 나의 정서에 부합하는 것 같고 사극에서는 전우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조선명탐정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능청스럽고 상대방을 할 말 없게 만들지만 크게 기분상하지 않을 정도로 줄타기를 하는 재치가 감탄을 자아낸다. 중간중간 가볍게 물흐르듯 툭 치는 말장난은 한국 특유의 투박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정을 찾을 수 있다. 성적 농담도 특정단어를 언급하기보다 비유를 통해 스치듯 지나가지만 스멀스멀 나오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서양보다 보수적인 동양에서 가족과 함께 봐도 딱히 어색해지지 않는 정도이다. 한국의 코미디는 이처럼 능청스러움과 줄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국식 코미디에 익숙한 나에게 미국의 코미디는 약간 낯설 수밖에 없다. 우선 미국식 코미디하면 보다 개방적인 성적 농담과 자신감 넘치고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언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디 앨런의 '해리 파괴하기'에서도 동양권의 나에게 있어서는 수위가 높은 성적 농담이 나온다. 특히 우디 앨런은 '해리 파괴하기', '애니 홀', '슬리퍼'에서도 빠지지 않고 코미디 요소로 섹스를 사용하는 만큼 그의 영화는 한국에서 즐겨보던 로맨스 코미디 영화와 결이 달라 낯설었다. 미국의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성적 농담을 볼 때 항상 드는 생각은 '와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이다. '슬리퍼'에서도 기계와 수동식을 두고 대화를 주고받는 둘을 보고 있자면 지금은 그렇다 해도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함께 보는 것은 피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디 앨런이 로맨스 코미디에서 사용하는 성과 관련된 농담이 한국에서까지 얼마나 웃음을 자아낼지는 확실치 않지만 최소한 미국보다는 덜할 것이라 판단된다. 이번 주는 영화를 보는 사람의 문화적 배경이 영화와 감독의 가치를 파악하는 데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