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득 영화

느낌의 형성

by 문득이의 바람 2022. 1. 30.

<빅히스토리> 옛다, 인간 나왔다. – 박문호 박사

  월말 김어준 2021 4월호

 

           무언가를 보거나 들을 때 왠지 예감이 좋아’, ‘그냥 맘에 들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꺼려지네’, 영 아닌 것 같은데와 같은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외부대상에 대한 자연적 반응으로 발생하는 느낌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하나의 특성이다.

           느낌은 감각적 정보-생존반응 표출-신체 피드백 동반-뇌피질의 상태-기억5단계를 거쳐 발생한다. 공부는 하지 않고 몰래 핸드폰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가 방에 불쑥 들어온 상황을 상상해보자. 문이 열리는 청각 정보가 뇌에 인식된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그 누구보다 빠르게 핸드폰을 끄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펜은 이미 손에 놓여 있을 것이다. 동시에 심장은 조마조마해지면서 온몸이 긴장상태에 들어간다. 만약 그 전날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라면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둔감하게 반응했을 것이고 움직임 또한 느려졌을 것이다. 이 모든 단계에 과거 딴짓거리를 하다가 들켜 뻘쭘했거나 혼난 기억들이 관여한다. , 기억은 방문이 열리는 외부상황에 싸하다라는 느낌을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그 기억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어도 지금까지 축적해온 기억들은 느낌을 형성하는 촉발제가 된다.

 

사고확장 1. ‘그냥의 느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단호박 스프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달콤함과 고소함이 조화를 이루는 그 맛이 지친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것 같다. 이 때, 단호박 스프를 먹으며 느끼는 감정은 단호박 스프 자체의 맛 때문이기보다는 단호박에 대한 기억 또는 비슷한 촉감과 맛을 가진 다른 음식에 관한 기억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단호박이나 비슷한 특정 음식과 관련된 추억이 떠올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느낌의 존재가 선행하는 기억의 필연성을 의미한다면 모든 취향, 선호도, 감정에는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근거가 있음이 분명해진다. 설명할 수 없음에도 내가 살아온 시간이 느낌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답은 영원히 미궁 속에 존재하겠지만 그 위치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느끼는 감정에 고유의 정당성이 부여된다는 자체로 그냥 좋다는 대답은 지금까지의 나를 압축하는 표현이 된다.

 

           개인적으로 여러 단어들 중 문득’, ‘그냥을 제일 좋아하는데, 좋아한다는 것이 이 단어들을 만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부분의 생각, 행동에 이유를 제시해야 하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그냥이라는 단어를 만발할 수 없기 때문에 쓰임의 소중함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문득 본가에 가고 싶다’, ‘그냥 단호박 스프가 좋다’, ‘오늘은 그냥 쉬고 싶다처럼 문득그냥의 단어는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잠시라도 숨쉴 틈을 제시해주는 휴식처로 다가온다. 박문호 박사님의 <빅히스토리> 편을 듣고 나서는 문득그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에 과학적 근거까지 추가된 것 같아 짜릿한 느낌까지 들었다.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냥은 설명하기 귀찮거나 억지로 우기기 위함이 아니라 내 삶 자체가 이유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단어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냥에 좋아하는 이유를 대고 과학적 정당성까지 찾다니, 모순적이긴 하나 이 또한 그냥 좋은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선행하는 기억이 있다는 자체가 느낌에 개인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있으나 사회적으로는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따돌리고 무시할 때 느끼는 우월감을 정당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회구성원들과 합의된 느낌을 공유하는 과정이 보다 중요해진다. 한 사회를 담고 있는 느낌이 그 사회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사회 간 관계에 영향을 준다. 느낌은 개인에서 타인으로, 집단으로, 사회로, 세계로 확장한다. 느낌의 충돌은 갈등을 발생시킬 수 있으나 합의를 통해 느낌의 결합도 가능하다. 세계화가 각국의 문화 및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느낌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이라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느낌은 무엇일까? 선거시기마다 극심해지는 색깔론, 미얀마와 홍콩에서의 자유투쟁, 러시아와 미국의 에너지 이해관계와 결부된 우크라이나 전쟁위기 등 상반된 느낌이 위기를 가져왔다.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합의된 느낌의 공유는 중요하다. ‘그냥이 한 명의 개인, 하나의 사회에서만 납득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시기가 아닐까?

 

사고확장 2.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

           비슷한 기억들은 하나의 범주로 구분되고, 공통된 특성이 의미기억으로 저장된다. 의미기억은 개념으로서 사피엔스는 언어를 이용하여 의미기억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사과들을 보면서 둥글고 딱딱하며 이 특정한 맛이 나는 과일사과라는 언어로 개념화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학습했을 때 투입된 정보와 고리를 맺을 의미기억이 없다면 뇌는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그대로 흘러 보낼 가능성이 크다. 소 귀에 경 읽기라는 옛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억 및 지식의 축적이 어려워지면 정보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의 다양성 또한 축소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경험은 다양한 기억으로, 다양한 기억은 다양한 느낌으로, 다양한 느낌은 판단의 근거로 작동하여 명확한 의사결정을 가능케 한다.

 

           여러 학문을 공부하고 기존에 속한 집단 밖으로 나가 낯선 경험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느낌의 확장에 있다. 수없이 많은 기억의 축적을 통해 미래의 정보들이 걸릴 수 있는 그물을 형성하는 것이다. 경험과 기억의 형성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그 결과인 느낌 자체를 체화하는 방법도 있다. 박문호 박사님의 말을 인용하자면,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기억을 바꿔야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와 정반대의 기억을 가진 사람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학습해야 한다. 느낌의 확장은 이전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3년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하며 느낀 점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방송, 광고, 언론분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물, 사회현상, 이념 등을 연결시킴으로써 수없이 많은 의미를 찾아가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기억들을 엮어내면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느낌을 발견하고 미래로 향하는 통로를 발굴할 수 있다. 그 궁극적 목표가 느낌의 형성에 있다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이 뇌와 가장 유사한 학문이지 않을까 하는 재밌는 생각을 해본다. 동시에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정보들과 경험들을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로 흘러 보냈는지 생각하면 굉장히 안타까워진다. 이에 2022년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 느낌을 확장함으로써 정보의 맥락을 읽는 힘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자 한다.

 

사고확장 3.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는 날

           느낌은 감각정보에 인간의 기억이 결합하면서 탄생할 수 있었다. 현재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수없이 많은 외부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이미 인간의 감각정보 학습능력을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 우리의 기억을 투영하면 어떻게 될까? 기계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인 느낌과 감정을 갖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나와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순간 나와 그 기계의 차이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만약 한 명의 기억이 아니라 개개인, 사회전체, 세계전체의 기억을 학습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느낌이 탄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나면서 너고, 우리이자 그들이면서, 이 세계 전체이자 우주라면 신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AI가 갖게 될 느낌이 인류 전체의 희망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 전에 인류가 기계에 지배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우주라는 공간이 AI의 시뮬레이션이며 이미 인류가 실험대상으로 조종당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