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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영화

영화 '라임라이트' (찰리 채플린) 리뷰 - 삶이 목적 그 자체가 될 때

by 문득이의 바람 2022. 9. 6.

칼베로는 과거에 유명한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현재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다.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칼베로는 한순간에 등을 돌려 버리는 관객들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을 것이다. 굳건했던 왕좌에서 내려와 초라한 현실을 마주했음에도 칼베로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반대로 테리에게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연설하며 영화가 진행된다. 허망한 현실과 찬란한 말, 이 상반되는 두 요소는 칼베로의 슬픔을 극대화시킨다.

칼베로가 테리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조언하는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 칼베로조차도 다시금 무대에 설 기회가 찾아왔을 때는 두려웠을 것이다. 어렵게 찾아온 무대에서 관객의 외면을 마주한 후에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 때마다 칼베로는 테리에게,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다. 이 때 의미하는 확신은 칼베로에게 있어 행복과 단순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허망함을 느낀 이후 관객을 웃기는 것은 더이상 칼베로에게 있어 행복의 '수단'이 아니다. 그보다는 코미디언이라는 삶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현실을 살아간다. 삶이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면 결과의 성패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과거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칼베로는 인생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때 비로소 우리가 고난을 버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에 관객의 인정과 공연의 성공은 행복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칼베로의 인생을 가득 채우는 단 하나의 소명이 된다. 행복해지기 위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삶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칼베로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다면 미완의 삶을 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확신이었을 것이다.

테리는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미래의 실패에 대한 자기방어를 위해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 자기 자신조차 속인다. 이에 칼베로는 결과의 성패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삶을 영위하라고 테리의 용기를 북돋는다. 칼베로는 자신의 공연이 과거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테리가 승승장구하자 진심으로 그녀의 성공을 바란다. 칼베로와 테리의 상반되는 상황은 영화의 비극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칼베로는 벼랑 끝에 선 그녀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용기를 갖고 일어서면 삶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테리에게 용기를 줌과 동시에 그녀로부터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한 말은 칼베로 자신에게 건넨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테리의 성공이 칼베로가 삶의 소명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라면 더이상 이 둘의 상반된 현실은 비극이 아니게 된다.

마지막에 칼베로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고 박수 부대가 아닌 진짜 관객들의 박수까지 받앗을 때 칼베로의 목적이 달성된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소명을 달성하고 마지막을 장식한 한 인간의 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테리의 아름다운 춤은 그의 죽음을 고귀한 결말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죽음과 생기돋는 춤이 역설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칼베로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떠났음을 생각하면 칼베로의 마지막을 웃으며 배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극 중 테리의 동선과 일직선으로 칼베로가 놓였기에 테리는 그의 마지막을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춤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칼베로가 삶의 목적을 달성하고 인생을 후련하게 떠났음을 알았기에 그녀의 춤은 그를 축하하는 마지막 인사이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비극 속의 희극, 슬픈 현실과 상반되는 용기로 가득찬 말, 인물 간의 대비되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삶의 본질을 파악하면 극 중의 역설적인 요소들은 모두 해소된다. 고난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인생은 더이상 비극이 아니라 각자마다의 소명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고귀한 삶 그 자체가 된다.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 이것이 칼베로가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조언일 것이다.